독일, 중국산 저가 공세에 태도 변화…현대차·기아에 새로운 기회 열리나

독일 정치권이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의 무역 방어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해 통상 문제에서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던 독일이 입장을 바꾸면서 유럽의 대중국 무역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독일 집권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민주·기독사회당(CDU·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 의회 그룹은 최근 유럽 산업을 불공정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동 제안을 마련했다.
이번 제안의 핵심은 EU 차원에서 반덤핑과 반보조금 조치를 더욱 신속하고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건 자체에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독일 의회 관계자들은 중국의 과잉생산과 이에 따른 저가 제품의 유럽 유입을 주요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이 이 같은 움직임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확대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독일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약 893억 유로까지 증가했다. 이는 전년보다 약 220억 유로 늘어난 규모다.
과거 독일은 중국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폭스바겐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상당한 비중으로 의존하고 있어 중국과의 통상 갈등이 확대되는 데 부담을 느껴왔다.
중국이 독일 제품에 대한 보복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독일 정부가 대중국 무역 규제에 신중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판매 영역을 빠르게 넓히면서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EU 역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 방어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EU가 시행하고 있는 반덤핑 및 반보조금 조치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 전기차에는 업체에 따라 최대 35.3%의 상계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독일 정치권은 단순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통상 장벽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유럽 자동차 산업의 규제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도 함께 내놨다.
CDU·CSU와 SPD 측은 EU 집행위원회에 2035년 이후에도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효율이 높은 내연기관차 등이 시장에 남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PHEV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27년부터 적용될 예정인 새로운 PHEV 배출량 산정 기준에 대해서는 시행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요구했다.
EU는 이미 자동차의 탄소배출 규제를 일부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EU 집행위원회는 2035년부터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사실상 100% 줄이는 기존 목표를 90% 수준으로 조정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다만 해당 내용은 아직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유럽의 정책 변화는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체코에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아는 슬로바키아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따라서 향후 EU가 자동차 산업 지원이나 전기차 관련 혜택을 제공하면서 유럽 내 생산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 경우 현대차와 기아는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산 전기차와 완성차 업체에 대한 견제가 더욱 강해질 경우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일부 개선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되는 방향이 반드시 국내 기업에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EU가 향후 보조금이나 각종 지원 정책의 조건으로 유럽 현지 생산 비중이나 현지 부품 사용률 등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할 경우 한국에서 생산한 차량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량에는 새로운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결국 독일의 이번 움직임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한 대응을 넘어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산업정책 변화와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와 기아 입장에서는 중국 업체에 대한 유럽의 견제가 강화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유럽 현지 생산과 공급망 구축에 대한 요구가 커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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